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岡山歴史のまちしるべ多言語版(H29渡場町の由来と豊国橋)

[2026年3月10日]

ID:79244

Origin of Watashiba-cho and Toyokuni Bridge

渡場町的由来与丰国桥

渡場町的由來與豐國橋

와타시바초의 유래와 요시쿠니바시 (풍국교)

渡場町の由来と豊国橋

Origin of Watashiba-cho and Toyokuni Bridge

The Chugoku Ogaeshi (Great Return from the Chugoku Campaign) led by Toyotomi Hideyoshi is known as one of the most remarkable forced marches of the Sengoku period. Hideyoshi’s army is said to have covered approximately 230 kilometers in about ten days, traveling from Bitchu Takamatsu Castle (present-day Takamatsu in Kita Ward, Okayama City) to Yamazaki in Yamashiro Province (present-day Oyamazaki, Kyoto Prefecture).

There are several theories concerning the route taken by Hideyoshi’s army. According to Joto-gunshi (History of Joto County, 1922), this area once had a ferry crossing (watashiba) where Hideyoshi’s troops are said to have crossed the Yoshii River. It is said that the area was later named Watashiba-cho (Fording Place Town) so that this event would be remembered by later generations. (The name Watashiba-cho is no longer in use today.)

Another record, Saidaiji-choshi (History of Saidaiji Town, 1971), notes that the Toyokuni Bridge over the Nishigawa River was named in honor of Hideyoshi, who is believed to have crossed there. Thus, both the former town and the bridge carry names linked to Hideyoshi.

The current Toyokuni Bridge is a later reconstruction, and its original appearance can no longer be seen. However, one of its oyabashira (pillar posts bearing the bridge’s name) has been preserved and relocated to the grounds of Ogamigawa Shrine, within the Watashiba Children’s Park area.

渡場町的由来与丰国桥

丰臣秀吉的“中国(日本的中国地区)大返军”是日本战国时代著名的长途急行军。传说他率军从备中高松城(位于冈山市北区高松)出发,历经约230公里,于十天左右抵达京都府乙训郡大山崎町的山城山崎,堪称当时最惊人的军事行动。

关于丰臣秀吉在“中国大返军”中的行军路线,历来说法不一。根据《上道郡志》(大正11年,1922年)记载,在这一带曾有秀吉军队渡过吉井川的“渡场”。据说为了将这一历史传说传给后世,这一地区后来被命名为“渡场町”。(如今,“渡场町”这一地名已不复存在。)

另外,《西大寺町志》(昭和46年,1971年)中记载道:“架设于西川上的‘丰国桥’,据传因丰臣秀吉曾经经过此地而得名。”由此可见,不仅地名,连桥梁也沿用了与秀吉有关的称号。

现在,横跨西川的丰国桥已被重新修建,无法看到当时的原貌。然而,原丰国桥上刻有桥名的“亲柱”(桥名石柱)现已迁至雄神川神社境内(位于渡场儿童广场内)保存。

渡場町的由來與豐國橋

豐臣秀吉之「中國(日本的中國地区)大返軍」於日本戰國時代著名之長途急行軍。傳說其自備中高松城(位於岡山市北區高松)出發,行程約230公里,約10日便抵達京都府乙訓郡大山崎町之山城山崎,堪稱當時最驚人之軍事行動。

關於豐臣秀吉於「中國大返軍」中之行軍路線,歷來說法不一。根據《上道郡志》(大正11年,1922年)所記載,此地一帶曾有秀吉軍隊渡過吉井川之「渡場」。相傳為了將此段歷史傳說流傳後世,該地後來被命名為「渡場町」。(如今,「渡場町」此地名已不復存在。)

另據《西大寺町志》(昭和46年,1971年)記載:「架設於西川上之『豐國橋』,據傳因豐臣秀吉曾經經過此地而得名。」由此可見,不僅是地名,連橋名亦沿用與秀吉相關之稱號。

如今橫跨西川之豐國橋已重建,早無昔日原貌。然而,原豐國橋上刻有橋名之「親柱」(橋名石柱)現已遷至雄神川神社境內(位於渡場兒童廣場內)保存。


와타시바초의 유래와 요시쿠니바시 (풍국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고쿠 대반격은 비추 타카마쓰성(현재 오카야마시 기타구 타카마쓰)에서 야마시로 야마자키(현재 교토부 오토쿠니군 오야마자키초)까지 약 230킬로미터를 약 열흘 만에 주파한,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초강행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고쿠 대반격 당시의 히데요시 군의 행로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조토군지 다이쇼11년(1922년)』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히데요시 군이 요시이가와(강)를 건넜던 와타시바 (도선장)가 있었다고 하며, 그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와타시바초’라는 지명이 붙여졌다고 전해집니다. (현재는 와타시바초라는 지명은 사라졌습니다.)

또한 『사이다이지초지 쇼와 46년(1971년)』에는 “니시가와(강)에 놓인 토요쿠니바시는 히데요시가 건넌 다리라 하여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라는 기록이 있으며 지명뿐 아니라 다리에도 히데요시와 관련된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니시가와에 놓인 도요쿠니바시는 재가설된 것으로 당시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다리의 이름이 새겨진 기둥은 오가미가와 신사의 경내(와타시바 어린이 광장)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습니다.


渡場町の由来と豊国橋

豊臣秀吉の中国大返しは、備中高松城(岡山市北区高松)から山城山崎(京都府乙訓郡大山崎町)までの約230kmを10日前後で移動した戦国時代屈指の大強行軍として知られています。

中国大返しの際の秀吉軍の行程については諸説ありますが、『上道郡誌(大正11年)』によると、この地域には秀吉軍が吉井川を渡った渡場があったとされ、そのことを後世に伝えるため渡場町と名付けたと云われています。(現在、渡場町という町名は無くなっています。)

また、『西大寺町誌(昭和46年)』には「西川に架かる豊国橋は、秀吉が通った橋だから名付けられたと伝えられている。」との記載があり、町名だけでなく橋にも秀吉由来の名前が付けられています。

現在、西川に架かる豊国橋は架替されたもので、当時の様子は伺えませんが、豊国橋の親柱(橋の名前が記された柱)は雄神川神社の境内(渡場ちびっこ広場内)に移設され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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